1996년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아빠는 시장님’은 제목에서 풍기듯 단순한 가족극 같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와 공공의 책임, 그리고 개인과 가족이라는 사적 삶의 충돌을 정교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시장’이라는 공적인 역할과 ‘아버지’라는 사적인 책임이 교차하는 공간 속에서, 이 드라마는 권력의 이면, 인간적 고뇌, 그리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의 진심을 풀어냈다. 특히 현실과의 접점을 가진 드라마라는 점에서, 단지 허구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일상 속 ‘정치의 얼굴’을 성찰하게 만든 점이 돋보였다.

시장이라는 이름, 아버지라는 이름 사이에서
드라마 ‘아빠는 시장님’은 중견 배우 최불암이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그는 극 중에서 성실하고 원칙주의자인 ‘시장’으로 등장하며, 동시에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살아간다. 이 작품은 이중적인 역할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선택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좋은 시장’과 ‘좋은 아버지’가 과연 양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드라마 초반, 그는 시민의 이익을 위해 소신 있는 결정을 내리며 주목을 받는다. 부정부패를 단호히 거부하고, 기득권에 굴하지 않으며,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또 다른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시간을 원하고, 아내는 외로움을 호소하며, 가족은 그를 '시장'이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 바라보기를 원한다.
이 드라마는 ‘정치인도 결국 한 사람의 남편이고, 아버지다’라는 인간적인 시선을 기반으로 전개된다. 공적인 역할이 사적인 삶을 얼마나 침범할 수 있는지, 혹은 그 경계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를 인물의 일상과 감정 변화로 세밀하게 포착한다. 그것은 거창한 권력 이야기가 아니라, ‘아빠가 왜 우리랑 저녁도 못 먹는지’에 대한 아이의 물음처럼 아주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시선은 드라마를 단순한 가족극 이상의 메시지 드라마로 확장시킨다. 현실 정치와 시민의 삶, 그리고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개인의 인간적 고민을 담아냄으로써,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중적 정의를 재고하게 만든다.
정치의 본질은 사람에 있다
‘아빠는 시장님’은 이상적인 정치의 구현을 보여주기보다는, 정치가 가진 딜레마와 인간적 충돌을 전면에 드러낸다. 주인공 시장은 공적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민의 반발을 감수해야 하고, 때로는 지지자들과의 의견 충돌 속에서 고독을 감내해야 한다. 그는 완벽하지 않으며, 그 불완전함이 이 드라마를 더욱 진정성 있게 만든다.
특히 정치와 가족이 충돌할 때, 드라마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그는 딸의 생일날 회의 일정을 미룰 수 없고, 아내와의 약속을 매번 어기게 된다. 가족은 점점 실망하고, 그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반대로, 그가 시장으로서 수행한 정책들은 분명 시민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드라마는 이 간극을 통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정치인의 숙명을 조명한다.
또한 극 중에는 다양한 사회 이슈들이 현실적으로 다뤄진다. 재개발 문제, 노점상 단속, 복지 예산 배분 등. 이러한 갈등들은 실제 사회와 맞닿아 있으며, 주인공은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고민하는 행정가로 그려진다. 이러한 묘사는 정치라는 영역이 단지 ‘결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그는 종종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려 한다. 회의실이 아니라 시장 골목에서, 시민센터에서, 심지어 민원 현장에서. 이 장면들은 정치가 권위가 아니라, 관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즉, 정치란 거대한 담론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결국, 이 드라마는 정치인의 인간적인 고뇌를 중심에 두고, ‘권력’이 아닌 ‘책임’이라는 가치에 더 무게를 둔다. 주인공의 선택은 때로 실수이고, 그 실수는 그가 정치인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진솔한 지점이다.
정치는 거창하지 않다, 가족을 위한 결정처럼 가까이 있다
‘아빠는 시장님’은 정치와 가족, 공적인 책임과 사적인 관계가 어떻게 충돌하고, 또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지를 따뜻하고 현실감 있게 풀어낸 드라마였다. 정치가 먼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결정하는 ‘마음의 태도’라는 사실을 이 작품은 조용히 일깨운다.
우리는 종종 정치인을 영웅이길 원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길 바란다. 이 드라마는 그 양극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 정치도 결국 사람의 일이며, 인간적인 고민과 감정 없이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곧, 시민을 위해 고민하는 정치인의 모습과 겹쳐진다. ‘시장’이기에 갖는 무게, ‘아버지’이기에 느끼는 책임.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은 결국 우리 모두의 삶과도 닮아 있다. 그래서 ‘아빠는 시장님’은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