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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공화국’이 비춘 권력과 인간의 민낯

by 노랑주황하늘 2026.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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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MBC에서 방영된 정치 드라마 ‘제4공화국’은 박정희 정권 말기부터 전두환 집권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를 조명하며, 실제 정치사와 허구적 서사를 절묘하게 엮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역사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권력을 향한 인간들의 야망, 배신, 충성심, 그리고 양심의 충돌을 통해 ‘권력이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했다. 당시 시청자들은 실제 역사 인물의 분신처럼 느껴지는 캐릭터들을 통해, 정치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임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되었다.

연설하는 사진

역사는 사실 위에 감정을 더해 완성된다

1990년대 중반, 한국 사회는 민주화 이후 과거 권위주의 시대를 돌아보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MBC 드라마 ‘제4공화국’은 현대 정치사를 드라마 형식으로 풀어낸 대작으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사건으로 끝난 제3공화국 이후,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 세력이 등장하고 제4공화국이 수립되는 시기까지를 촘촘히 재현했다.

‘제4공화국’의 가장 큰 강점은 ‘사실’과 ‘감정’을 결합한 데 있다. 단순한 다큐멘터리적 재현이 아니라, 인물들의 내면과 갈등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함으로써 시청자들이 역사적 사건을 ‘사건’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으로 체감하게 만들었다. 특히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하고 있으나, 이름과 설정은 일부 각색되어 있어, 시청자는 역사와 허구 사이에서 균형 있게 몰입할 수 있었다.

주요 인물인 ‘장태준’은 권력을 향한 집착과 동시에 민심을 의식하는 정치인의 이중성을 잘 드러내는 인물로, 전형적인 권력자의 내면을 보여주며 중심축 역할을 했다. 그는 동료를 배신하고, 민중을 통제하려 하면서도, 스스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복합적인 캐릭터였다. 이처럼 ‘제4공화국’은 단순히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렌즈 역할을 했다.

정치 드라마의 전환점, 인간과 권력의 충돌

‘제4공화국’은 기존의 정치 드라마와는 결이 달랐다. 이 작품은 단순한 권력 암투극이 아니라, 권력과 인간성 사이의 충돌을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정치라는 구조 속에 놓인 개인의 삶과 감정을 전면에 내세웠다. 주인공 장태준은 정권 유지와 확대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지만, 동시에 그가 맞닥뜨리는 역사적 사건들은 그를 끊임없이 시험대에 올려놓는다.

특히 12·12 군사 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에피소드는, 드라마 전체의 정점을 이루는 서사로 기능한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는 민중의 목소리와 권력의 논리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민간인 사찰, 언론 통제, 정적 제거 등의 장면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인간 심리와 조직의 논리를 입체적으로 풀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흥미로운 점은, 극 중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단순한 ‘악역’이나 ‘선역’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 인물은 자신만의 신념과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고 선택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민중의 편에 서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체제의 일원으로 안착하는 인물, 정의를 외치지만 가족을 위해 타협하는 인물 등은 모두 현실에서 충분히 공감 가능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는 정치가 ‘절대 선’과 ‘절대 악’의 대립이 아니라, 타협과 책임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드라마적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한 방식이었다.

또한 연출과 대본 역시 탁월했다. 당시로선 드물게 실제 사건들을 기반으로 정밀한 연대기 구성과 내러티브를 구축했으며,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인간 중심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제작 철학은 이후 ‘제5공화국’, ‘여명의 눈동자’, ‘한반도’ 등의 정치·역사 드라마의 모태가 되었다.

‘제4공화국’, 기억과 질문을 남긴 정치 드라마

‘제4공화국’은 한국 정치드라마의 지평을 확장시킨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권력 앞에 선 인간의 본성과,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를 날카롭고 깊이 있게 다뤘다. 때문에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는 동안 역사책을 넘기는 듯한 느낌과, 인간 드라마를 감상하는 감정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정치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법과 체제, 조직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결정 뒤에는 언제나 인간의 욕망, 불안, 책임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갈등이야말로 우리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마주해야 할 질문임을 상기시킨다.

30년이 지난 지금, ‘제4공화국’이 던졌던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여전히 권력의 속성과 그에 따른 인간의 선택을 목도하고 있으며, 그 선택의 무게를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다. 그렇기에 ‘제4공화국’은 단지 시대를 기록한 드라마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효한 성찰을 남긴 귀중한 문화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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