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폴리스’는 경찰이라는 직업을 중심에 두고, 법 집행자이자 시민의 친구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등과 고뇌, 그리고 사명감을 깊이 있게 다룬 수작이다. 단순히 사건 해결 중심의 스릴러가 아니라, 조직과 개인, 정의와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경찰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집중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형식적인 정의 구현보다, 인물들의 윤리적 딜레마와 감정적 충돌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폴리스’가 한국 드라마 속 경찰 서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살펴본다.

정의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인간의 표정
드라마 ‘폴리스’는 제목 그대로, 경찰이라는 직업을 정면으로 다룬 드라마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흔히 생각하는 범죄 수사물과는 결을 달리했다.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 넘치는 장면보다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과 감정,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주인공 강동호(이정재 분)는 원칙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적인 성향을 가진 형사다. 그는 법과 정의를 신념처럼 따르지만, 현실은 그가 기대한 정의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동료 경찰, 조직의 논리, 언론의 시선, 시민의 불신 등 다양한 압박 속에서 그는 점점 고민에 빠지고, ‘진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드라마는 단순한 선악 구도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선한 의도조차 왜곡되고, 절차를 따랐음에도 비난받는 상황을 통해, 법과 윤리, 정의 사이의 간극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이는 경찰이라는 직업이 가진 고충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시청자로 하여금 감정적으로 공감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또한 ‘폴리스’는 팀워크를 강조하면서도, 각 인물의 내면 서사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다. 경찰 내부의 위계, 개인의 사연, 과거의 상처, 직업적 소명 등은 단순한 장르물에서 보기 어려운 깊이를 더하며, ‘사건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흔들리는 경찰의 자화상
‘폴리스’는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그 사건을 마주하는 경찰들의 감정과 판단, 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사회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강동호는 법을 지키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그는 ‘정의’를 실현하려 하지만, 정의는 종종 조직의 논리나 사회의 편견에 의해 왜곡된다.
드라마는 이러한 갈등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 ‘경찰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동료와의 의견 충돌, 상관의 지시와 개인적 소신 사이에서 동호가 내리는 선택은 때때로 옳고 그름을 나누기 어려운 회색지대에 있다. 이 회색지대의 존재는 드라마를 현실적으로 만들고, 시청자에게도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또한 ‘폴리스’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을 통해 경찰의 역할을 재조명한다. 단순히 범인을 잡는 존재가 아닌,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고, 사건이 끝난 후에도 그들의 일상을 지켜보는 경찰의 모습은 ‘공권력’이 아닌 ‘공감력’을 강조하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이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당시 드라마 속 경찰 캐릭터의 전형을 벗어나, 인간적인 서사에 방점을 찍는다.
여기에 더해, 드라마는 경찰 내부의 문제도 가감 없이 다룬다. 조직 내 부패, 형식적인 보고 체계, 실적 중심의 평가 문화 등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강동호는 그 안에서 타협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그 과정에서 점점 더 고립되고, 갈등을 겪는다. 이러한 설정은 당시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투영하는 동시에, 개인의 고뇌와 사명의식이 충돌하는 지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정의의 무게를 견딘 사람들, 그리고 남은 질문
‘폴리스’는 단지 경찰을 멋지게 묘사한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드라마는 경찰이라는 직업을 살아 있는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적 문제와 감정적 고통을 정직하게 보여줬다. 그래서 ‘폴리스’는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오늘날의 눈으로 보아도 ‘폴리스’가 던진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법을 지킨다고 정의로운가? 사회는 경찰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그 기대는 정당한가? 조직과 신념 사이에서 어떤 선택이 옳은가? 이 드라마는 이렇듯 단순한 해결책보다는, 끝까지 고민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폴리스’는 우리 사회에서 경찰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한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그들이 단순한 공권력의 집행자가 아닌, 고민하고 아파하며, 때론 실수도 하는 인간임을 깨닫게 해 준 드라마. 그리고 그 깨달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의미 있는 성찰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