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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 난민아동, 인권, 생존

by 노랑주황하늘 2025.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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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출신 감독 나딘 라바키의 영화 ‘가버나움’은 전 세계 난민과 아동 인권 문제를 강하게 조명하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같은 사실감과 비극적인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태어날 권리조차 박탈당한 한 소년의 고통스러운 삶을 담아냈다. '가버나움'은 히브리어로 혼돈과 절망의 공간을 뜻하며, 영화는 제목 그대로 그 혼돈 속에서 생존하려는 아이들의 처절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단순한 동정심이 아닌, 시스템에 대한 분노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가난, 이주, 아동 노동, 법적 보호의 부재 등 국제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하나의 소년의 시선을 통해 깊이 있게 풀어낸 이 작품은, 무겁지만 꼭 봐야 할 현대의 필견작이다.

 

물방울 부는 사진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아이의 절규

‘가버나움’의 주인공 자인(Zain)은 열두 살 난 소년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수많은 책임을 짊어진 어른처럼 살아간다.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그는 법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 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노동에 시달리고,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분투한다. 영화는 자인의 시선을 통해 무책임한 부모와 가난, 제도적 무관심이 어떻게 아이 한 명의 삶을 붕괴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자인이 법정에 서게 되는 계기는 다름 아닌 ‘부모를 고소하기 위해서’다. 그는 부모에게 “나를 낳았기 때문에” 죄가 있다고 말한다. 충격적인 이 대사는 자인의 삶이 얼마나 고통으로 가득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단지 사랑받고 보호받기를 원했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가정은 보호막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공간이었고, 사회는 그를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영화는 감정적인 자극을 피하면서도, 자인의 삶을 따라가며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우리는 누군가를 낳을 자격이 있는가?', '태어날 권리는 누구의 몫인가?' 같은 질문은 매우 근본적이며 도덕적인 질문이다. 자인의 부모는 그저 가난하고 무지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무지가 아이의 생명을 짓밟는다. 감독은 이러한 모순을 조용히, 하지만 강력하게 고발한다.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자인이 길거리에서 동생을 데리고 우유를 훔치며 생존하는 장면이다. 관객은 그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생각보다, 이 아이가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영화는 자인의 현실에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을 안긴다.

어른들의 세계 속 잊힌 존재들

자인이 살아가는 세상은 아이가 살기에는 너무나 거칠고 잔혹하다. 어른들은 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책임만을 요구한다. 부모는 자인을 무책임하게 다루고, 사회는 그를 보호하지 않는다.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그는 병원에도, 학교에도, 심지어 국가의 통계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인은 존재하되,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이다. 이 개념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비극적인 설정이다. 그는 거리에서 다른 난민들과 만나고,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인 미등록 이주 노동자 라힐과 함께 지내기도 한다. 라힐은 아이를 혼자 키우며 불법 체류자로서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간다. 자인은 그녀의 아이를 돌보며 잠시나마 ‘가족’이라는 유대를 느끼지만, 그녀마저 체포되면서 자인은 다시 거리로 내몰린다. 자인의 삶은 언제나 일시적인 평화와 끊임없는 위기의 반복이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이 세상에는 단 한 번도 환영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려왔다.

 

내가 누리는 안정이 누군가에겐 평생 닿지 못할 희망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가장 끔찍한 사실은, 이 모든 상황이 ‘제도 안의 정상’이라는 점이다. 부모는 자식을 출생신고하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으며, 불법 체류자는 언제든 감옥에 갈 수 있고, 아이들은 교육은커녕 최소한의 의료 서비스조차 받지 못한다.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특정 개인이 아닌 전체 시스템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가버나움’은 이처럼 어른들의 세계에 무관심하게 방치된 아이들의 존재를 조명한다. 그들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시스템이 허용한 차별과 방관 속에 사라진다. 자인은 수많은 잊힌 존재들을 상징한다.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준 이유는, 자인을 통해 전 세계 수많은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절망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성

‘가버나움’이 특별한 이유는, 비극적인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인간의 따뜻함과 연대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인은 반복해서 버려지고 외면당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작은 연대의 순간들이 존재한다. 라힐과의 만남, 거리의 노점상과의 교류, 아이와의 유대는 자인의 삶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도록 버텨주는 숨결 같은 존재들이다. 특히 후반부 자인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정확히 말한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절망의 외침 속에서도, 자인이 아이로서 처음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만든다.

 

그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비단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과 같은 수많은 아이들을 위한 저항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실제 사연은 영화의 현실감을 더욱 높여준다.

자인을 연기한 배우도 실제로 시리아 난민 출신 아동이며, 극 중 다른 인물들 역시 실존 배경을 지닌 비전문 배우들이다. 이 덕분에 ‘가버나움’은 영화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현실 기록물처럼 다가온다. 감독은 허구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도록 만든다. ‘가버나움’은 비극을 통해 울게 만들지만, 동시에 인간 안의 연민과 공감 능력, 그리고 희망을 다시 보게 만든다. 영화는 묻는다. 우리가 이 아이의 외침을 외면한다면, 그다음은 누구의 차례냐고.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슬픔을 선사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무관심과 제도적 외면이 만들어낸 비극의 거울이다. 자인의 삶은 레바논의 가난한 골목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상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무관심의 폭력을 직시하게 만들고, 동시에 작은 연민과 연대가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가버나움'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반드시 봐야 할 영화이며, 이 영화를 본 관객은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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