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더는 우리가 익숙하다고 믿는 모성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는 영화다. 이 작품은 어머니라는 존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파헤치며, 진실을 향한 집착이 어떤 윤리적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서늘하게 보여준다. 자폐 성향이 있는 아들이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면서, 어머니는 사회가 외면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선다. 하지만 그녀의 추적은 점점 정의를 위한 행동이라기보다는,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 폭력에 가까워진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모성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모든 행동이 반드시 옳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관객의 믿음을 뒤흔들고, 인간의 본능이 윤리보다 우선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마더는 모성을 미화하지 않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집착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한 영화다.
시작은 아들을 위한 믿음이었다
영화는 아들의 억울함을 믿는 어머니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도준은 자폐 성향을 가진 청년이며, 마을에서 발생한 소녀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경찰은 형식적인 조사와 억지 자백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고, 변호인조차 형량을 줄이는 데에만 관심을 둔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머니는 오직 자신만이 아들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어머니가 아들을 믿는 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며, 그녀의 행동은 처음에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동기로 보인다. 그녀는 아들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사건 현장을 찾아가고, 목격자들을 탐문하며, 경찰과 변호사의 허술함을 직접 메워 나간다.
하지만 이 믿음은 점차 방향을 달리한다. 사실 확인이 아닌, 아들의 결백을 증명해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발전하고, 그것은 곧 진실보다 감정의 무게가 앞서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 영화는 이때부터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어머니는 도준이 진실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녀의 행동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명백한 왜곡의 가능성이다. 영화는 믿음이라는 감정이 진실보다 얼마나 무서운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지를 치밀하게 드러낸다.
이 시점에서 관객은 처음 품었던 연민과 공감을 의심하게 된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진실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조작할 수도 있는 인물로 변화한다. 그것은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며,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모성을 다시 정의하려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마더는 후반부에 이르러 충격적인 반전을 제시한다. 어머니가 밝혀낸 진실은 아들이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사건과 얽혀 있었다는 점이다. 진범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관객은 안도하기보다 깊은 불편함을 느낀다.
어머니는 그 진범에게 다가가고, 결국 살인을 저지른다. 그 행위는 아들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제거하는 선택이다. 영화는 이 대목에서 매우 섬세한 심리 묘사를 보여준다. 그녀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묻어버리는 길을 택한다.
이 장면은 사랑이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어머니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 정의와 윤리를 외면하고 스스로 범죄자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경찰이나 사회가 외면한 진실을 밝혔지만, 그 진실을 끝내 세상에 전하지 않는다.
이 선택은 모든 윤리적 판단을 뒤흔든다. 영화는 이 지점을 강조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모성이라는 감정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런 선택을 우리는 얼마나 쉽게 이해하고 용서하고 있는가.
마더는 어머니를 악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관객이 그 행동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게 만든다. 사랑은 보호가 되기도 하지만, 파괴가 되기도 한다. 영화는 그 경계에서 균형을 유지하지 않고, 명확히 무너뜨린다.
결국 영화가 말하는 폭력은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사랑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가장 깊은 어둠 속에 가두고 만다.
모성이라는 신화의 해체
마더는 모성을 숭고한 감정으로 그리지 않는다. 이 영화는 오히려 모성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위험한 신화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영화 속 어머니는 도준과 단둘이 살아가며, 오직 아들만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왔다. 그녀에게 도준은 아들이자 삶의 이유이자, 유일한 존재다.
이 설정은 어머니라는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충실히 수행해 온 한 여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그 틀을 철저히 흔든다. 모성은 영화 속에서 숭고한 희생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 그리고 소유와 동일시로 이어진다. 어머니는 도준이 상처받지 않도록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며, 그 결과 그는 현실을 스스로 이해하거나 방어할 수 없는 존재로 남는다.
도준은 어머니의 보호 속에서 자랐지만,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다. 그것은 어머니가 그를 위해 희생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희생이 결국 통제로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 점을 분명히 한다.
모성은 영화에서 사랑과 보호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두려움과 집착, 그리고 자신을 투영한 기대가 뒤섞여 있다. 어머니는 도준의 삶을 지키기 위해 진범을 죽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머니는 홀로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떠난다. 그녀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춤을 춘다. 그 장면은 해방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끝내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감정의 진공처럼 느껴진다.
마더는 모성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그것은 숭고한 이상이 아니라, 끊임없는 균열과 갈등, 감정의 소용돌이로 이뤄진 복잡한 감정이다. 영화는 그 복잡함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며, 관객에게 말한다. 우리가 믿어온 모성은, 어쩌면 신화였는지도 모른다.
결론
마더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언제 어떻게 윤리를 넘어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이 작품은 모성이란 이름 아래 감춰진 수많은 감정의 층위를 드러내며, 그것이 진실을 왜곡하거나 폭력을 유발할 수 있음을 냉정하게 포착한다. 어머니의 행동은 이해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윤리적 충돌은 감정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는 관객이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마더는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이 영화는 모성을 찬양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위험한 감정일 수 있는지를 끈질기게 보여준다. 마더는 사랑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사랑의 결과에 대한 영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반드시 아름답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