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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톤 자폐, 성장, 가족

by 노랑주황하늘 2025.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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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톤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청년이 마라톤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어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작품은 자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넘어, 한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서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가는지를 진정성 있게 조명한다. 주인공 초원은 통상적인 소통방식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뛰는 것’만큼은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대하며 그 속에서 존재를 증명해 나간다. 어머니의 헌신, 코치의 갈등, 사회의 벽 등 다양한 요소들이 섬세하게 얽혀 있으며, 그 속에서 초원의 결승선은 단지 기록이 아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의 완성으로 읽힌다. 영화는 한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해, 결국 가족, 교육, 사회 전반에 걸친 메시지를 전달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달리기 하는 사진

자폐 스펙트럼과 사회적 시선의 간극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흔히 '소통이 어려운 장애'로 이해되며, 그에 따른 사회적 오해도 여전히 크다. 영화 속 주인공 초원은 말투가 일정하고 상황에 따라 반복되는 반응을 보이며,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 규범에서 자주 벗어난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단지 불편함이나 결핍으로만 보지 않는다. 초원의 행동에는 일관된 논리와 감정이 있으며, 주변 인물들이 그의 시각을 이해해 가며 관계의 전환이 시작된다.

초원이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것은 그가 비정상이라서가 아니라, 세상이 그를 받아들이는 틀이 너무 협소하기 때문이다. 그는 뛰는 것에 몰입하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삶을 살아간다. 그 모습은 마치 규격화된 교육과 소통 방식을 벗어난 인간이, 자신만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자폐에 대한 통념을 재정립하며, 그들이 가진 고유한 사고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방식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초원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 또한 다양하다. 어머니 경숙은 아들을 세상에 인정받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마라톤이라는 수단을 통해 초원의 존재감을 사회 속에 증명하려 한다. 그녀의 헌신은 때때로 강박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식을 위한 절실함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코치 윤교사는 초원을 처음에는 체육활동의 도구로 바라보지만, 점차 그의 내면을 이해하며 진심을 갖게 된다. 이처럼 각 인물들이 초원을 대하는 방식은 우리 사회가 장애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그대로 투영한다.

달리기를 통한 자기 발견

초원에게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어릴 적부터 걷고 뛰는 것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으며, 반복된 행동 속에서 자신만의 질서와 안정을 찾는다. 마라톤이라는 고된 과정 속에서도 초원은 페이스가 무너지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리듬을 유지한다. 그 모습은 주변의 시선이나 기록에 연연하지 않는 인간 고유의 본질적 움직임처럼 다가온다.

달리기를 통해 초원은 타인과 경쟁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세계와 접점을 만드는 방법을 익힌다. 처음에는 강제로 훈련을 받고, 어머니의 계획에 맞춰 행동하지만 점차 그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감각과 순간을 찾아낸다. 이 변화는 뚜렷하게 대사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초원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무엇보다 뛰는 자세에서 자연스럽게 읽힌다. 마라톤은 고독한 운동이지만, 초원에게는 가장 명확한 ‘소통의 언어’였다.

한 장면에서 초원이 비를 맞으며 기뻐하는 순간이 있다. 그 표정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순수했고, 마치 세상과 자신이 하나가 된 듯한 감각을 보여주었다. 감정이 분출되는 그 장면을 보며, 모든 소통이 말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뛰는 행위가 그에게는 말보다 더 명확한 표현이었고, 관객 또한 그 언어를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초원의 여정은 ‘성장’이라기보다는, ‘자기 발견’에 가깝다. 기존 사회가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만의 리듬과 방식으로 세계를 받아들이고 적응해 가는 과정은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마라톤의 결승선은 완주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자세로 달려왔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영화는 그 과정을 끝까지 응시하며, 진정한 성장의 의미를 조용히 되새기게 만든다.

가족의 무게와 사랑의 언어

초원이라는 인물의 여정에는 언제나 어머니 경숙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경숙은 초원의 장애를 사회가 바라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아들의 가능성을 세상에 증명하고자 강한 열망을 드러낸다. 그녀의 양육방식은 때때로 주변 사람들에게 강압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보통의 삶’을 살아보게 하고 싶은 진심이 녹아 있다. 그 과정에서 초원과 갈등도 겪지만, 영화는 그녀의 시선을 단순한 억압으로 보지 않고, 그 안의 모성애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경숙은 사회복지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아들을 위해 하나하나 직접 길을 닦는다. 마라톤이라는 도전도 그 연장선이다. 그러나 그녀 역시 한 인간으로서 지치고 흔들리는 순간들이 있다. 초원이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기대와 다른 반응을 보일 때 경숙은 좌절을 경험한다. 특히 마라톤 훈련 중 초원이 갑작스레 사라지는 장면은, 그녀의 불안이 극대화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그 모든 혼란의 끝에서도 그녀는 초원의 곁을 지킨다.

아버지의 부재, 형제와의 거리감도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초원은 가족 안에서도 완전히 이해받지는 못하지만, 동시에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 살아간다. 그 확신은 말이 아닌 행동, 반복되는 일상에서 비롯된다. 가족 구성원들이 초원의 방식에 익숙해지고,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면서 비로소 관계가 만들어진다. 영화는 가족을 통해 사랑이란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을 진하게 전한다.

결말에서 초원이 마라톤을 완주하고, 어머니와 포옹하는 장면은 단지 한 번의 도전이 끝났다는 의미를 넘어, 가족 간의 오랜 시간과 오해를 지나 마침내 서로의 언어를 알아보게 된 순간을 뜻한다. 사랑은 반드시 동일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야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며, 이 영화는 그 다양한 형태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처럼 말아톤은 가족의 무게와 사랑의 언어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자폐라는 특정한 장애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주인공 초원의 여정은 단지 특별한 아이의 극복 서사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얼마나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지를 묻는 서사로 이어진다. 이 영화는 ‘정상’이라는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하며, 각자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 또한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한다. 초원이 마라톤을 통해 세상과 나누는 숨결은, 비단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닿는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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