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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국가, 양심, 법정

by 노랑주황하늘 2025.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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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은 1980년대 초 부산을 배경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법정 드라마다. 평범한 세무 전문 변호사였던 송우석이 ‘부림 사건’을 계기로 국가 폭력에 맞서게 되면서, 법조인의 사명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단지 한 청년을 변호하는 일이 아니라,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개인의 존엄을 침해할 수 있는지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변호인은 한국 현대사 속 ‘법’의 의미를 되짚으며, 정의와 양심, 그리고 침묵하지 않는 용기의 가치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판결 망치, 법전 사진

송우석이라는 인물의 각성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은 초반부에서 그저 성공만을 좇는 속물적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사법고시 출신도 아닌 고졸 학력의 세무 전문 변호사로, 법보다 돈을 우선시하며 재산증식에만 관심이 많다. 법조인으로서의 이상은 없고, 생활인의 논리로 무장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 인물이 서서히 변화하게 되는 계기는 단순히 개인적 감정에서 출발한다. 과거 자신에게 밥을 싸주던 국밥집 아주머니의 아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면서, 그는 처음으로 법이 개인에게 얼마나 무서운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체험하게 된다. 그가 맡게 된 ‘부림 사건’은 실제로 1981년 부산에서 발생한 조작 간첩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그 사건의 맥락과 진행 과정을 과장 없이 재현하며, 송우석의 시선으로 그 불합리함을 따라간다. 처음에는 국밥집 아주머니의 부탁이었지만, 수사기록을 검토하고, 피의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그는 서서히 국가폭력의 실체를 인식한다. 고문, 허위 자백, 조작된 증거… 이 모든 것이 국가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송우석이 영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두려움도 느끼고, 자신의 위치를 잃을까 망설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1항을 되뇌며 용기를 낸다. 영화는 이 인물의 변화 과정을 감정적으로 따라가는 대신, 현실적이고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송우석은 결국 ‘변호사’에서 ‘변호인’으로 거듭난다. 직업이 아닌 사명을 지닌 사람으로 변화하며, 법이 사람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여야 한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국가 폭력과 법의 두 얼굴

변호인은 법이 어떻게 정의가 될 수 있는지, 또는 어떻게 정의를 가장한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특히 영화 속에서 검찰과 법원이 보여주는 모습은, 권력이 ‘법’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검사는 증거 없이 유죄를 주장하며, 판사는 고문 자백에 기반한 증거를 채택한다. 피고인의 인권은 고려되지 않으며, 절차적 정의는 무시된다. 이러한 설정은 단지 영화적 연출이 아니라, 실제 과거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의 재현이다. 영화는 법정 장면을 통해 법이 가진 양면성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피고인석에 선 학생들은 조용히 앉아 있지만,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폭력 그 자체였다. 말할 수 없는 고문과 협박, 그리고 그것을 덮는 조직적인 은폐. 특히 재판이 시작되기 전, 송우석이 법정을 나설지 말지를 고민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그는 침묵할 수도 있었고, 그 자리에 서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증거와 논리로 승부하겠다고 다짐하며, 재판을 통해 진실을 밝히려 한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분명하다. 법은 무기가 될 수도, 방패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느냐는 결국 사람의 몫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단지 과거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법을 가진 자가 아닌,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에게 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영화는 깊이 있게 성찰한다. 변호인은 ‘법’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실제 사건과 인물에 투영시킴으로써, 관객이 자신의 삶과 국가 시스템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울림을 남긴 대사와 장면들

영화 변호인의 힘은 명백한 주제 의식뿐만 아니라, 그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에도 있다.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지 않으면서도, 관객의 가슴에 오래 남는 대사와 장면들이 여럿 존재한다.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는 송우석이 피고인을 향해 “당신은 법을 몰라도, 나는 압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이 대사는 법을 아는 자로서의 책임을 상기시키며, 동시에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또한 재판 중, 송우석이 헌법 제1조를 인용하며 “국민이 주인이다”라고 외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이다. 단지 법적 인용구가 아니라, 당대 모든 시민의 염원이 함축된 대사다. 이 밖에도 인물 간의 짧은 대화, 국밥집 아주머니의 눈물, 교도소 유리창 너머의 침묵 등은 말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연출 또한 과하지 않다. 과거 시대의 분위기를 재현하면서도, 감정의 과잉 없이 현실적인 톤을 유지한다. 카메라는 종종 인물의 눈높이에서 머물며, 그들의 감정을 따라간다. 긴 침묵이나 정적인 장면은 오히려 더 큰 감정적 충격을 준다.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다. 송강호는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해 인물의 성장과 갈등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곽도원, 임시완, 김영애 등의 조연들도 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극의 밀도를 높인다. 영화는 법정 드라마이면서도, 인간 드라마이며, 동시에 시대를 반영한 정치 드라마다. 각 장면은 명료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장면이 끝나고 나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영화 변호인은 단지 과거를 돌아보는 작품이 아니다. 이 영화는 “법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정의의 본질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국가는 법으로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 법이 국민을 억압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변호인은 그 경계와 충돌을 날카롭고도 따뜻하게 그려낸다. 송우석이라는 인물의 변화는 특정 인물의 영웅적 서사를 넘어서, 모든 시민이 가진 가능성의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변호인이 될 수 있으며, 어느 날에는 스스로의 변호인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그 가능성과 책임을 관객에게 조용히 건넨다. 정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편에 서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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