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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 소년병, 권력폭력, 희망회복

by 노랑주황하늘 2025.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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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은 전쟁이 어떻게 한 인간의 영혼을 무너뜨리는지를 소년병이라는 소재를 통해 극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아프리카의 가상 국가에서 벌어지는 내전을 배경으로, 소년 아구가 반군에 끌려가 전사가 되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다. 단순한 전쟁영화가 아닌 이 작품은, 잔혹한 폭력과 파괴 속에서도 인간다움의 잔해를 어떻게든 지키려는 아이의 내면을 조명한다. 감독 캐리 후쿠나가는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사실적인 연출을 통해 관객이 직접 현장을 겪는 듯한 체험을 하게 만든다. 특히 주인공 아구의 독백과 침묵은 단순한 대사 이상의 힘을 발휘하며, 관객에게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게 하되, 그곳에도 희망의 가능성이 존재함을 보여주려는 치열한 시도의 결과물이다.

 

말타는 군인 사진

소년병의 시작

영화는 소년 아구의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출발한다. 아구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조용한 일상을 보내며, 가족과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던 평범한 아이였다. 그러나 내전의 그림자가 마을을 덮치면서, 그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정부군의 공격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그는 혼자 정글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아구는 반군에게 붙잡히고,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병사로서의 삶을 강요당하게 된다.

소년병이 되는 과정은 물리적인 훈련이나 세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처음으로 총을 들고, 처음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순간들 속에서 아구는 빠르게 변화한다. 그는 거부감과 공포를 억누르며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차단하기 시작하고, 점차 자신을 소년으로 인식하지 않게 된다. 반군 조직은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워버리고, 감정을 버리게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전쟁은 한 인간의 자아를 어떻게 해체하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처음엔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데 급급했던 아구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하지만 그 판단은 더 이상 윤리나 도덕에 기반하지 않다.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그의 눈빛은 점차 굳어가고, 동료들이 죽어가는 장면 앞에서도 동요하지 않다. 이 무감각은 곧 병사로서의 조건이자, 소년이 인간에서 괴물로 탈바꿈하는 상징이 된다.

그러나 영화는 아구가 완전히 괴물이 되었다고 단정하지 않다.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기억이 살아 있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간헐적으로 솟아오른다. 특히 독백을 통해 그는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상기하려 하고, 전쟁 이전의 자아를 끝까지 잊지 않으려 애쓴다. 이것이 바로 아구라는 인물이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끊임없이 인간성을 지키려는 주체로서 기능하는 이유다.

권력과 폭력의 중독

아구가 소속된 반군은 단순한 무장 조직이 아니다. 그 안에는 나름의 질서와 계급이 존재하고, 가장 높은 위치에는 지휘관이 자리한다. 이 인물은 자신만의 정치적 언어로 아이들을 설득하고 통제한다. 그는 자유를 외치며 그들을 전장으로 끌어들이고, 복수를 명분 삼아 잔혹한 행위를 정당화한다. 아이들은 이 허울 좋은 언어를 믿으며 총을 잡는다. 전쟁은 그렇게 정당화된다.

지휘관은 단지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폭력적으로 병사들을 통제하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한다. 아구는 그런 지휘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그로부터의 관심을 생존의 조건으로 여긴다.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위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해 나가는 과정은, 전쟁이 어떻게 인간을 도구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아구는 점차 감정을 잃는다. 처음엔 죄책감에 몸을 떨던 소년이었지만, 반복되는 죽음과 학살 속에서 그는 무표정해진다. 이 무표정은 살아남기 위한 방어기제이자, 전쟁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의 적응이다. 관객은 그의 눈빛을 통해 변화의 깊이를 실감하게 된다.

특히 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아구가 처음으로 어린 포로를 직접 처형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눈을 감지 않고 정면을 바라본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은 공포와 무기력, 그리고 어떤 체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인간이 권력을 통해 어떻게 잔인함에 중독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이 장면은, 영화의 정서적 정점을 이룬다.

영화는 이러한 폭력과 권력의 상호작용을 묘사하며, 관객에게 단순한 분노 이상의 감정을 일으킨다. 그것은 측은함이며, 불편함이며, 동시에 부끄러움이다. 우리는 그런 폭력이 여전히 현실 곳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을 되찾는 시간

영화 후반부, 아구는 더 이상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 반군의 해체 이후 그는 보호소에 맡겨지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전쟁은 그의 몸과 마음 모두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어린아이로 인식하지 못한다. 아구는 스스로를 괴물이라 생각하며, 다른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보호소에서의 시간은 그에게 회복의 과정이자, 내면의 고요를 되찾는 시도다. 말수가 적고, 표정도 굳어 있는 그는 매일 일과를 반복하며 스스로를 치유하려 한다. 영화는 이 장면들을 매우 절제된 톤으로 그린다. 거창한 구원이나 극적인 회복은 없다. 대신 미세한 변화들이 쌓여 간다. 누군가의 말에 반응하고, 함께 밥을 먹고, 천천히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들 속에서 아구는 다시 자신을 회복해 간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장면이다. 그 공간은 전장과 완전히 단절된 세계이며, 아구도 잠시나마 그 안에 섞인다. 그는 말없이 물에 발을 담그고,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 작게 미소를 짓는다. 이 장면은 그가 인간성을 완전히 잃지 않았음을, 그리고 여전히 회복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회복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아구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직시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결심. 그것이 이 영화가 전하는 가장 강력한 희망이다. 전쟁은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지만, 그 사람 안에 남아 있는 인간성의 불씨까지 꺼뜨리지는 못한다.

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다시 인간다움을 되찾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특히 소년병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자극에 의존하지 않고, 섬세하고 진지한 태도로 이야기를 풀어낸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 영화는 전쟁의 현실을 고발함과 동시에, 그 안에서 살아남은 한 아이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말한다. 잔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되, 거기서 희망을 찾는 시도. 그것이 이 작품이 가진 힘이며, 오랫동안 기억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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