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바하’는 단순한 종교 미스터리를 넘어선, 한국 사회에서의 신흥 종교의 실체와 인간 내면의 공포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장재현 감독의 특유의 밀도 높은 서사와 상징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한 공포 이상의 철학적 사유를 유도한다. 영화는 가상의 종교 집단 ‘사슴동산’을 중심으로, 그 속에 감춰진 집단의 비윤리성과 광기, 그리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쌍둥이 소녀’의 비밀을 추적하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시종일관 음침하고 건조한 분위기 속에서도, 캐릭터들이 풀어가는 퍼즐은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다. 종교, 구원, 인간의 악에 대한 질문이 뒤섞인 이 작품은 단순한 오컬트 영화의 틀을 벗어나, 종교와 심리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문제작이다.

기이한 태생, 쌍둥이 소녀가 상징하는 것
영화의 서사는 한 쌍둥이 자매의 출생으로부터 시작된다. 둘 중 한 명은 정상이었고, 다른 한 명은 괴이한 존재로 묘사된다. 그녀는 사람의 언어를 하지 못하고,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스스로를 ‘짐승’이라 칭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관객은 그녀의 존재를 단순히 ‘기형’이나 ‘악마’로 볼 수 없게 된다. 오히려 그녀는 영화의 핵심인 ‘진짜 악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중심에 선다. 쌍둥이의 출생 자체가 이미 ‘이원성(dualism)’의 상징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의 선과 악, 불교적 윤회에서의 업과 해탈, 그리고 현실 속 종교 집단에서의 배제와 선택은 모두 이 두 아이의 존재에 응축되어 있다. ‘사바하’는 여기서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왜곡과 인간이 만든 선악 구도의 허상을 드러낸다.
또한, 이 아이들의 출생은 ‘구원받을 자’와 ‘제물로 바쳐질 자’의 경계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선택받은 자만이 천국에 이른다는 사슴동산의 교리는, 결국 이 아이 중 하나를 악으로 규정하며 살인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 규정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날카롭게 묘사한다. 정작 '짐승'이라 불린 아이는 어떤 해도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진정한 악은 인간의 교리와 편견임을 드러낸다. 관객은 점점 진실에 다가서면서 혼란을 느끼게 된다. 과연 괴물은 누구인가? 이상한 언어를 쓰는 아이인가, 아니면 그녀를 없애려 했던 어른들인가? 이 질문은 영화의 진짜 공포가 괴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신흥 종교의 어두운 민낯과 구조화된 맹신
‘사바하’의 또 다른 핵심은 한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어온 신흥 종교의 폐쇄성과 구조화된 맹신에 대한 날 선 비판이다. 영화 속 ‘사슴동산’은 외형적으로는 따뜻하고 포용적인 공동체로 보인다. 교리도 인간적인 사랑과 구원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이면을 파고들수록, 이 집단은 철저하게 이익과 권력 구조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다. 이 집단은 예언과 신탁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을 선택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은밀한 실험과 조작을 가한다. 교리 해석은 특정 인물에게만 권한이 주어지며, 그 해석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신도들은 이에 무비판적으로 따르며, 반론이나 의심은 ‘신을 거스르는 죄’로 규정된다. 이러한 구조는 실제 현실의 여러 사이비 종교 단체들이 가진 권력 집중 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영화 속 종교 집단이 현실의 뉴스 기사와 너무 닮아 있어 오히려 영화보다 현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믿음’이 인간을 어떻게 무장해제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사바하’는 종교적 믿음이 어떻게 왜곡되고, 그것이 얼마나 쉽게 악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치밀하게 해부한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교리에 따라 서열화되고, 어떤 아이는 ‘하늘의 아이’, 어떤 아이는 ‘짐승’으로 낙인찍히는 과정은 극도로 충격적이다. 영화는 이를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폭력이라 명확히 규정한다. 또한 영화는 미디어, 정치, 공권력까지 이 종교 집단과 유착되어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기자의 접근이 차단되고, 경찰은 무기력하며, 공권력은 진실을 외면한다. 이러한 구성은 종교가 단지 개인의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시스템 속 권력 구조로 작동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묘사한다.
믿음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윤리의 붕괴
‘사바하’에서 종교는 결코 구원의 수단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오히려 구원의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하고, 순결한 존재를 악으로 규정하며, 교리를 무기로 삼아 윤리를 해체한다. 이 작품에서 진짜 악은 악마가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해쳐도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런 구조는 영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반복된다. 과거에 벌어진 쌍둥이 출생의 비밀부터 시작해, 현재 종교 단체의 내막, 의문의 살인 사건까지 모두가 ‘구원을 위한’ 명분 아래 벌어진 일들이다. 하지만 관객은 점차 그것이 전혀 신성하지 않으며, 오히려 철저히 인간적인 욕망과 공포에 기반한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영화 속 목사이자 주인공인 박 목사는 이러한 현실을 파헤치는 역할을 맡는다. 그는 스스로도 믿음의 경계에서 혼란을 겪으며, 자신이 쫓는 진실이 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윤리를 위한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한다. 그가 도달한 진실은 종교 너머의 ‘인간성’이다. 영화는 결국 신의 존재 여부보다,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집중한다. 이러한 구조는 종교영화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접근이다. 영화는 결말에서 어떤 신도 등장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이 만들어낸 신념과 해석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위험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신을 향한 열망이 과연 타인을 향한 폭력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영화의 마지막까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며, 동시에 깊은 사유로 이끈다.
‘사바하’는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지만, 그 본질은 철저히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영화다. 선과 악의 경계를 흔들고,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메커니즘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인간이 신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쉽게 타인을 해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괴물이 등장하지만, 정작 그 괴물은 우리 내부의 광기와 맹신을 상징한다. ‘사바하’는 단순히 무섭고 음산한 이야기가 아니라, 종교와 인간성, 도덕과 폭력 사이에서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이며,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