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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스토리텔링 기법, 원작, 여성중심

by 노랑주황하늘 2025.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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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2016)는 단순한 시대극이나 로맨스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복수극, 스릴러, 여성 로맨스, 계급 비판, 민족 정체성, 욕망의 해방까지 아우르는 입체적인 예술 영화로 평가받습니다. 영국 작가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Fingersmith)』를 원작으로 하지만, 그 각색은 단순한 공간 전환을 넘어 문화적 재해석과 성정치적 재구성까지 담아내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아가씨의 스토리텔링 구조의 탁월함, 원작과의 본질적 차이점, 그리고 여성 중심 서사의 의의를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보라색 티아라 모양으로 물방울이 튀면서 대칭된 사진

스토리텔링 기법: 다층 구조와 감정의 시간차

아가씨는 매우 정교하게 설계된 3막 구조의 서사 체계를 따르되, 일반적인 선형 구조를 따르지 않습니다. 영화는 각기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반복되며, 동일한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명합니다. 이로 인해 관객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새로운 진실과 감정의 층위를 계속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1부는 숙희(김태리 분)의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숙희는 조선 하층민 출신의 소매치기 가족에서 자라났고, 백작 신스케(하정우 분)의 계획에 따라 일본 귀족 히데코(김민희 분)를 속여 결혼시키고 정신병원에 보내려는 사기극의 일환으로 그녀의 하녀가 됩니다. 그러나 숙희는 점차 히데코에게 감정적, 성적 끌림을 느끼며 혼란에 빠지고, 결국 계획은 엇나가기 시작합니다.

2부는 히데코의 시점입니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작의 조종을 받고 있었고, 삼촌(조진웅 분)의 저택에서 강제로 야한 서양 고서의 낭독회를 해오며 억압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속이려는 숙희와 백작의 의도를 알면서도, 오히려 숙희를 이용해 자신의 해방을 모색합니다.

3부는 두 여성의 시점이 뒤섞이며 공모와 연대, 그리고 해방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숙희와 히데코는 결국 모든 남성 인물을 따돌리고 정신병원, 결혼 사기, 낭독실의 굴욕 모두를 벗어던진 채, 사랑과 자유를 택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플롯의 반전 그 이상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관객에게 신뢰할 수 없는 시점을 제공함으로써, 진실과 감정, 권력과 정체성의 복잡함을 탐구하게 만듭니다. 스토리텔링 자체가 '여성의 시선을 복원하는 도구'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정치적이면서도 감정적으로 탁월합니다.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와의 핵심 차이점

아가씨는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하지만, 그 차이는 단순한 배경 변경에 그치지 않습니다. 원작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무대로 하며, 신분 차이와 여성 억압, 계급 구조 속의 사기극과 사랑을 다룹니다. 영화는 이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과 일본이라는 구도로 바꾸며, 민족·성·계급이 교차하는 이중 삼중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주요 차이점 요약:

  • 배경: 원작은 산업혁명기 영국 / 영화는 일제강점기 조선
  • 계급 구조: 원작은 귀족 대 하층민 / 영화는 일본 제국주의 대 식민지 조선
  • 서사적 시선: 원작은 수전(숙희)의 성장담 / 영화는 히데코의 해방과 숙희의 연대로 중심이 이동
  • 남성 인물의 역할: 원작에서는 백작이 더 복잡한 존재 / 영화에서는 모든 남성 인물이 여성의 억압자, 도구로 그려짐

특히 영화는 ‘포르노그래픽한 고서 낭독’이라는 장치를 활용해, 여성의 욕망이 어떻게 억압되었는가, 그리고 여성 간의 연대가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역전시키는가를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원작보다 훨씬 더 명확한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박찬욱 감독이 이 작품을 정치적 선언으로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성 중심 서사: 욕망, 연대, 해방의 3단 구조

아가씨는 철저히 여성 중심의 영화입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숙희와 히데코이며, 이 둘의 관계는 초기의 거래, 사기, 조종에서 점차 공감, 연대, 사랑, 해방으로 진화합니다.

숙희는 하층민으로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히데코를 속입니다. 히데코는 겉으로는 유약한 아가씨지만, 실은 오랜 시간 삼촌에게 심리적 학대와 성적 착취를 당한 피해자입니다. 이 두 사람은 처음에는 서로를 이용하려고 하지만, 점차 서로의 고통과 억압을 이해하게 되며, 관계는 진정한 연대의 파트너십으로 발전합니다.

이 영화에서의 여성 중심 서사는 단순히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서사 구조, 시선, 성적 표현 방식 자체를 뒤엎는 전복적 시도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 속 동성 간의 성애 장면들은 관음적 카메라가 아닌, 감정적 교감의 연출로 표현됩니다. 이는 여성을 소비의 대상이 아닌, 서사의 주체이자 욕망의 주체로 재배치하는 방식입니다.

더 나아가, 두 여성은 결말에서 남성들의 세계—백작, 코우즈키, 정신병원, 낭독실—모두를 벗어나 배 위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로 탈출합니다. 이는 상징적으로도 가부장제와 식민 구조의 거부, 여성 주체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결국 아가씨는 여성 간의 연대가 남성 지배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설득하는 영화이며, 이 점에서 매우 진보적인 스토리텔링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아가씨는 단순한 스릴러도, 관능적 멜로도 아닙니다. 그것은 서사의 구조, 문화적 맥락, 인물의 욕망과 정체성을 종합적으로 엮어낸 복합장르의 수작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기존 원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적 해석과 여성 중심의 시선을 도입하여, 전통적인 남성 주도 영화 문법에 반기를 든 혁신적 서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스토리텔링 기법은 시점을 통한 진실의 해체로, 원작은 단초가 되었고, 여성 서사는 주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아가씨는 한국 영화뿐 아니라 세계 영화사 속에서도 중요한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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