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캔 스피크는 역사와 기억을 다루면서도 감정의 무게에 압도되지 않고, 오히려 유쾌함과 따뜻함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영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옥분 할머니가 공무원 민원실을 수없이 찾아가며 갈등을 일으키는 일상은 잔소리 많은 민원인의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일상의 이면에 깊게 자리한 아픔과 용기를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결심, 그리고 그 증언이 가져오는 사회적 파장보다도, 한 개인이 스스로를 복원해 나가는 감정의 과정을 중심에 둔다. 이 작품은 침묵의 시대를 지나 증언의 시간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는 행위가 얼마나 용기 있는 선택인지,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말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그것을 지켜야 할 책임이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증언 이전의 시간들
옥분은 민원실을 수없이 찾아오며 동네의 모든 일에 간섭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것은 갈등이 아니다. 영화 초반 그녀는 주민 불편 사항을 개선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그것은 실은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 각인시키고자 하는 방식이다. 관객은 그녀의 행동을 잔소리 많은 할머니의 성격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감독은 그 이면에 자리한 진심을 숨기지 않는다.
옥분의 반복적인 민원은 오랜 침묵 끝에 드러나는 존재감의 외침이다. 그녀는 과거의 고통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영화는 이 시점에서 증언이 정보 전달이 아닌 감정적 행위임을 보여준다. 말하지 못한 세월이 길수록, 말하기까지의 거리도 멀어진다.
옥분이 영어를 배우기로 결심한 이유는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다. 말이라는 수단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그녀에게는 회복의 길이며, 동시에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는 통로다. 언어를 배워야만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고 느끼는 그녀의 마음은, 피해자가 세상에 말할 권리를 갖기까지 얼마나 많은 허들을 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길고, 그 침묵이 어떻게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드는지를 세심하게 다룬다. 옥분의 일상은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끊임없는 자기 검열과 타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말할 준비를 마친 내면의 결심이 자리하고 있다. 증언은 어느 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고통과의 화해, 그리고 사회와 마주할 용기를 축적한 끝에 이루어지는 선택이다.
말하는 순간의 용기
옥분이 영어를 배워 국제 인권 청문회에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는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그동안 가벼운 유머와 일상적 갈등 속에 숨겨져 있던 감정의 무게를 단번에 마주하게 된다.
증언은 정보를 공개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엄을 회복하는 동시에, 세상에 책임을 묻는 행위다. 옥분은 스스로의 과거를 다시 꺼내어 말하는 일을 선택함으로써,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이자 증언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전환의 순간은 영화를 넘어 관객에게도 강한 울림을 남긴다.
그녀의 증언은 비극을 고발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후대가 이 역사를 잊지 않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말하는 사람은 고통을 되살리는 대가를 치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기로 선택한 이들은 스스로의 상처를 넘어 사회 전체를 향해 손을 내민다.
이 장면이 인상적인 이유는, 그것이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진술이라는 점 때문이다. 누구도 그녀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그녀는 스스로 무대에 선다. 눈물 없이, 분노 없이, 담담한 말투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더 깊은 감정의 파문을 일으킨다.
이 장면은 역사의 고발이 아니라, 인간의 선언이다. 말할 수 있게 된 순간은 존재가 회복되는 순간이다. 영화는 이를 극적으로 연출하지 않고,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둔다. 그 덕분에 관객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말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고통은 헛되지 않다. 이 영화는 그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결국 관객에게 전이된다.
기억을 지키는 공동체의 역할
아이 캔 스피크는 피해자의 용기뿐 아니라, 그 용기를 어떻게 지지하고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옥분이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준비할 시간을 함께 기다려주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박민재는 처음에는 그녀를 귀찮아했지만, 점점 그녀의 진심을 이해하게 되고 영어 수업을 도우며 가까워진다. 그는 그녀의 삶에 개입하면서 점차 공동체의 일원으로 변화한다. 이 관계는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축을 이룬다.
기억은 혼자서 보존되지 않는다. 그것은 공유되어야 하며, 그 기억을 지키는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영화는 박민재의 변화를 통해, 무관심했던 사회가 어떻게 책임을 배워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말하는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단 한 명일지라도, 그 존재는 기억의 생존을 가능하게 한다.
영화는 증언의 순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두 사람의 신뢰와 성장 과정을 통해, 진정한 연대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것은 동정이나 시혜가 아닌, 함께 기억하고 함께 싸우는 태도다.
아이 캔 스피크는 침묵을 강요당했던 시대를 지나, 증언이 가능한 시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지를 조용히 들려준다. 그리고 그 증언이 역사로 남기 위해, 그것을 어떻게 지지해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이 영화는 한 인물의 변화가 어떻게 한 시대의 기억을 되살리는지를 섬세하게 연결한다. 옥분의 용기만으로는 증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다.
아이 캔 스피크는 역사를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라, 기억을 복원하고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이야기다. 증언은 고통을 다시 떠올리는 일이며, 동시에 세상을 향해 자신이 존재했음을 선언하는 일이다. 이 영화는 그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면서도,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말할 수 없었던 이들이 말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말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영화는 이 질문을 남긴다. 옥분의 이야기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아이 캔 스피크는 말하는 사람의 용기와, 그 말을 지켜야 할 사회의 책임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영화를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