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겉보기엔 1969년 할리우드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화려한 재현이지만, 그 이면에는 영화 산업의 변화와 몰락해 가는 스타 시스템, 그리고 개인의 내면적 균열이 정교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옛 시절을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를 사랑했던 시대의 끝자락에서 버티고 선 이들을 통해 ‘기억’과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지속되는지를 묻는다. 특히 리어나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릭 달튼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좌절하는 낡은 영웅의 상징이며,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스턴트맨 클리프는 그 곁에서 무너지는 세계를 묵묵히 지켜보는 또 하나의 관찰자다. 이 영화는 현실의 잔혹함과 상상의 구원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잊혀가는 스타의 그림자
릭 달튼은 한때 인기 TV 시리즈의 주연이었지만, 이제는 ‘과거의 배우’로 불리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그는 더 이상 주연이 아니라 악역 제안을 받으며, 트렌드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 머물러 있다. 젊고 새로운 배우들이 주목받는 사이, 릭은 자신의 연기력과 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는 알코올에 의지하고,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며 현실을 부정한다. 이러한 모습은 단순한 개인의 위기라기보다, 스타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던 당시 할리우드의 구조적 현실을 은유한다.
타란티노는 릭을 비웃지 않는다. 오히려 카메라는 그의 흔들리는 눈빛과 무너지는 자존감을 차분히 담아낸다. 릭은 자신이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다는 감각에 괴로워하고, 촬영 현장에서 대사를 잊는 자신을 보며 절망한다. 그는 변해가는 세상에서 길을 잃은 인물이다. 동시에 그는 변화할 수 없거나, 변화하고 싶지 않은 세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릭의 가장 인간적인 면모는 결국 자조 속에서도 무대 위에 서려는 노력이다. 그는 새로운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해내고, 다시 한번 자신을 증명해 보이려 애쓴다. 이 장면에서 타란티노는 릭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다. 그것은 단지 영화 속 사건이 아니라, 시대가 끝나가는 순간에도 인간은 여전히 의미를 찾고자 한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변해가는 산업, 달라진 세계
1969년은 단순한 시간의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사회, 특히 할리우드 영화계에 있어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고전적 스튜디오 시스템은 무너지고, 젊고 급진적인 감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배우와 스턴트맨, 감독의 역할도 새롭게 정의되던 시기였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이러한 변화를 배경으로 하되,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일상의 단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릭이 소외감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이 그 변화의 흐름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클리프 부스는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현장에서 점점 배제된다. 그는 유능하지만,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인물이다. 젊은이들은 새로운 언어와 감각을 원하고, 그들은 그 흐름에 속하지 못한다. 이들의 존재는 점차 투명해진다.
극 중에서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클리프가 찰스 맨슨 일당의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장면이다. 시대가 뒤집히고 있다는 감각이 불쑥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젊음과 급진성, 폭력성과 무질서가 섞인 공간에서 클리프는 오래된 질서의 잔재로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대립한다. 시대는 바뀌고 있지만, 바뀌지 않으려는 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내가 유독 마음에 남았던 대사는 릭이 친구에게 “이젠 나 같은 배우는 필요 없어”라고 말하던 순간이다. 그 짧은 문장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응축돼 있었다. 수용하지 못하는 자의 분노, 인정받고 싶은 갈망, 존재가 희미해진다는 공포. 시대는 변하고 있었고, 릭과 클리프는 그 끝자락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쉰다.
모든 이야기의 끝, 또 다른 시작
타란티노는 이 영화에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뒤섞는다. 찰스 맨슨 사건이라는 실제 비극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그는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새로운 결말을 제시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릭과 클리프는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려 했던 이들을 차단하며, 현실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이 장면은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통쾌하다. 그것은 현실이 주지 못한 정의를 영화가 되살리는 순간이며, 타란티노가 추구해 온 영화적 복수의 미학이 완성되는 지점이다.
이 결말이 인상 깊은 이유는 단순한 상상력의 발현이 아니라, 타란티노가 영화를 통해 세상을 위로하려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실제로는 비극으로 끝난 사건을, 상상력과 픽션을 통해 치유하려는 시도. 영화는 거짓일 수 있지만, 그 거짓은 때때로 진실보다 더 큰 위로를 제공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동화처럼 마무리된다.
릭은 처음으로 옆집에 사는 스타 샤론 테이트와 마주하고, 클리프는 병원으로 실려 간다. 모든 사건이 끝난 뒤 찾아온 고요함 속에서,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이 암시된다. 이 장면은 제목처럼 ‘옛날 옛적에…’로 시작된 이야기의 마지막에 놓인 따뜻한 한숨 같다. 그들은 살아남았고, 어쩌면 또 다른 시간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타란티노 감독의 필모그래피 가운데서도 유독 감정적으로 절제되어 있으며, 동시에 가장 개인적인 영화다. 잊혀가는 스타와 헌신적인 스턴트맨, 그리고 사라져 가는 할리우드의 한 시대를 향한 이 영화의 시선은 애틋하면서도 냉정하다. 이 영화는 변화의 시기에서 도태된 이들을 조롱하지 않고, 그들의 고통과 불안을 정직하게 담아낸다. 동시에 픽션이 현실을 위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스크린 위에 펼쳐 보인다. 결국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끝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시작이었으며,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그런 무수한 끝과 시작을 품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