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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진실, 연대, 용기

by 노랑주황하늘 2025.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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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스토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법정 투쟁을 다룬 실화 기반 작품이다. 1990년대, 일본 시모노세키 재판에 직접 참여한 여성들과 그들을 지원한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억압된 진실이 사회의 중심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는 피해자 개인의 고통만을 부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연대의 힘,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끈기와 용기를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감정적 호소에만 의존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과 인간의 윤리를 날카롭게 연결시킨 점에서 ‘허스토리’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영화로 평가받을 만하다. 여성들이 피해자로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주체로 그려지는 방식 역시 기존의 위안부 관련 콘텐츠와의 분명한 차별점이다.

 

자연 사진

법정에서 시작된 목소리

‘허스토리’의 핵심은 ‘증언’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피해자의 고백이 아니다. 영화는 피해 여성들이 법정에 서기까지의 긴 여정을 통해, 발화의 권리를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과거의 침묵을 깨고 자신을 드러낸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사회적 혁명이며, 이는 단지 개인적인 용기를 넘어, 구조적 침묵에 맞서는 집단적 선언이다. 이 영화는 그 발화를 이끌어낸 사람들, 즉 피해자와 연대자 양측의 태도에 주목한다. 피해 여성들은 법적 용어에 익숙하지 않고, 자신의 과거를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법정이라는 공간에서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은 학습하고, 반복하고, 마침내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은 단지 ‘위안부 피해’라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폭력의 구조를 고발하는 강력한 언어로 기능한다. 이 과정에서 돋보이는 것은 지원자들의 태도다. 특히 여성 사업가가 중심이 되어 재판을 주도하고, 법적,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단순한 동정이 아닌 ‘시민의 의무’에 가깝다. 그들은 법을 도구로 삼되, 감정을 통해 움직이고, 신념으로 유지되는 연대를 구축한다. 영화는 이러한 연대를 이상화하지 않는다. 때론 갈등도 있고, 지치고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가 ‘진실을 말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허스토리’는 단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시민적 실천이 얼마나 고귀할 수 있는지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말한다.

기록을 넘어선 인간의 얼굴

이 작품이 탁월한 이유는, 단지 역사적 기록을 따라가지 않고 인간 개개인의 고통과 삶을 복원하려는 진지한 태도에 있다. 영화는 법정 외부의 풍경, 피해자들의 일상, 그리고 그들의 기억을 감각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피해자’를 실체화된 인격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특히 법정에서의 증언 장면 외에도, 피해 여성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감정을 공유하는 장면은 말로 표현되지 않은 고통의 무게를 생생히 전달한다. 이 영화는 피해자의 고통을 상품화하지 않는다. 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도, 눈물과 슬픔을 강조하는 대신 묵묵한 표정을 통해 감정의 깊이를 전한다. 이는 관객이 동정이 아닌 ‘공감’을 통해 인물과 연결되도록 만든다. 또한 법정이 아닌 사적인 공간에서 이들이 얼마나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연출은, 단편적인 피해 서사를 넘어선 인간성을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감독은 감정을 조작하는 대신, 인물들이 스스로를 설명하도록 장을 마련해 준다. 그들은 울지만 울기 위해 말하지 않으며, 웃을 수 있는 순간에도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영화는 이런 인간적인 결을 통해, 피해자의 삶을 특정한 사건에 고정시키지 않고, 현재의 인간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과거의 고통은 제거할 수 없지만, 그 고통을 이야기하고 기록하는 현재는 가능하다는 점에서, ‘허스토리’는 역사 영화이면서도 철저히 ‘현재’를 사는 영화다. 관객은 인물의 과거를 이해하는 동시에, 그들이 현재에서 어떻게 존엄을 회복해 나가는지를 함께 목격하게 된다.

여성 서사의 확장과 정치성

‘허스토리’는 피해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한 영화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여성 서사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여성은 더 이상 침묵 속의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판단의 주체로서 스스로의 위치를 구축해 나간다. 단지 성적 피해자라는 정체성에 머무르지 않고, 이들은 법적 전투의 주체, 경제적 지지의 리더, 그리고 공적 공간에서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는 인물들로 묘사된다. 이러한 여성들의 연대는 혈연이나 개인적 친분이 아닌, 공통된 경험과 윤리적 신념에서 출발한다. 이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 역사 영화와 뚜렷하게 대비되는 점이다. 또한 영화는 이 연대가 어떻게 정치적 의미를 갖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국가 간의 외교적 갈등이나 역사 인식의 차이는 단지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여성들은 국가의 부재 속에서 스스로 주권적 존재로 행동하고, 이를 통해 사회 변화를 유도한다. 영화는 이런 여성들의 행동을 영웅화하지 않지만, 그 윤리적 명료함과 지속성을 통해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또한 이 연대가 단순히 여성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감하고 책임져야 할 문제라는 점에서, 보편적 서사로 확장된다. 다양한 세대와 배경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이 영화가 단순히 위안부 문제만을 다룬 작품이 아님을 시사한다. ‘허스토리’는 결국 여성 개개인의 삶을 복원함과 동시에, 그들의 연대를 사회적 윤리로 확장시켜 낸 작품이며, 이는 정치적 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허스토리’는 단지 과거의 잘못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연대하고, 서로를 지지하며, 역사의 어둠을 뚫고 나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영화는 특정한 피해를 중심에 두기보다는, 그 피해가 어떻게 사회적 문제로 전환되고, 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어떻게 존엄성을 회복해나가는지를 치열하게 다룬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여성을 단지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의 서사를 갖고 있으며, 법과 역사, 그리고 사회 속에서 분명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들이다. ‘허스토리’는 피해자, 연대자, 시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이야기이며, 그것은 단지 영화 속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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